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정기선시장의 불확실성이 가중된 가운데 앞으로 블랭크세일링(임시결항)을 활용한 선복 관리가 선사들의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이 될 거란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더불어 선사들이 결성한 정기선 제휴그룹(얼라이언스) 체제로 결항이 과거에 비해 용이해진 덕에 해운업계가 운임 협상력에서 우위에 서게 될 거란 전망도 제기됐다. 얼라이언스 체제를 앞세운 선사들의 유연한 선복 관리로 당분간 컨테이너선시장 전망은 밝을 거란 분석이다.
시인텔리전스 라르스 젠슨 최고경영자(CEO)는지난 4일 한국해양진흥공사(KOBC)가 온라인으로 주최한 ‘2020마리타임콘퍼런스’에서 선사들의 임시결항이 과거와 달리 빠르게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북미는 20%, 유럽은 30% 가까이 무역량이 줄었다.
물동량 감소에도 운임은 고공행진했다. 시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국컨테이너운임지수(CCFI)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1분기 8%, 2분기 6%로 각각 집계됐다. 상하이해운거래소가 발표한 컨테이너운임지수(SCFI) 역시 1분기 10%, 2분기 15%, 3분기 50% 올랐다.
최근 운임이 급등한 배경으로 젠슨 CEO는 선사들의 빠른 대응을 꼽았다. 선사들은 지난 2018~2019년 결항 규모를 과거보다 늘리며 선복 조절을 해왔다. 오랫동안 결항을 반복한 결과 올해는 1주일 이내에 선복 조절을 이뤄냈다. 화주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선적 예약을 줄인 거란 정보가 나오기 전부터 선제적으로 선복 감축에 나섰다는 게 젠슨 CEO의 설명이다. 특히 3대 얼라이언스 체제가 유연한 대응이 가능했던 원동력인 것으로 분석했다.
젠슨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났고 운임이 빠르게 하락했다. 선사들의 선복 감축은 3~4달 뒤에야 이뤄졌을 정도로 10~15년 전엔 시장이 완전히 파편화돼 있었다”면서도 “20여개였던 선사들이 10여개로 줄어든 데다 3대 얼라이언스 체제로 환경이 바뀌며 선복 조절이 용이해졌다. 담합으로 볼 순 없고 오히려 논리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선사들은 수요가 줄어도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 유리한 위치에 설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코로나로 불확실성은 가중됐지만 선사들이 과거와 달리 빠른 시간에 선복 조절이 가능해 화주와의 가격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할 거란 게 젠슨 CEO의 전망이다.
여기에 선사들의 신조선 인도량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호재로 꼽았다. 금융위기 당시 글로벌 선대 대비 60%에 달했던 인도량이 현재는 10%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젠슨은 “내년 수요가 늘어날지 줄어들지 알 수 없지만 선사들이 유연성을 갖췄다고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고 그것만으로 앞으로도 큰 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조선 협력체계 구축으로 돌파구 마련해야”
코로나19 사태로 북미항로 운임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원양노선에선 해운사업과 물류사업의 수직적인 통합을, 동남아노선에선 빅데이터를 활용한 전략적 협력이 우리나라 선사들에게서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KOBC 정영두 부장은 ‘해운산업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해운시장 9가지 핵심 키워드를 코로나19 미·중갈등 4차산업혁명 원양컨선 연근해컨선 건화물선 친환경 불확실성 해운산업(기업)경쟁력으로 꼽았다.
정 부장은 “원양컨테이너선 부문에서 10년 이상 리서치를 해왔지만 이렇게 운임이 급등한 건 이례적”이라며, “컨테이너선시장에서는 선사 간 통합이 끝나고 해운과 물류사업의 수직적 통합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머스크는 담코 블랙벅 KGH커스톰서비스를, CMA CGM은 세바로지스틱스 AMI월드와이드 컨테이너십스를, DP월드는 유니코로지스틱스 유니피더 피더텍 등과의 수직적 통합을 이뤄내며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정 부장은 “우리나라가 메가 컨선 경쟁은 뒤처졌지만 수직적 통합에 대해선 일단 글로벌 선사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만 홍콩선사들이 높은 물동량 점유율을 차지했던 동남아항로는 대형컨테이너선사와 씨랜드머스크 등 자회사들의 진출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신규 노선이 늘어나면서 선사들의 출혈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노선이 많고 복잡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현황과 전망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KOBC는 내년부터 국적선사들이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밀착 모니터링을 진행해 자료를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정 부장은 “동남아항로는 불확실성이 많고 리스크가 크다. 리스크를 분산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선사들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공급보다는 수요에 따라 건화물선 시황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 가운데 장기운송계약으로 재편된 우리나라 벌크선대가 현물운송(스폿) 비중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정 부장에 따르면 올해 발주된 벌크선은 130척 정도인데 2016년 최저 수준인 60척 다음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궁극적으로 향후 벌크선 인도량은 적어지고 해체량이 늘어남으로써 이제는 공급이 아닌 수요에 따라 건화물선 시황 변동성이 커질 거란 게 정 부장의 분석이다.
정 부장은 “야구로 치면 구원투수가 등판하기 전에 불펜에서 몸을 푸는 것처럼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우리 선사들도 발을 담그고 있어야 시황이나 시장이 요동칠 때 스팟 운송 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코로나19가 빠른 시일 안에 통제되고 경기가 V자로 반등할 경우 에너지 석탄 건설 철강 등의 수요가 늘어나며 시황이 회복할 것으로 점쳤다.
앞으로 다가올 탄소배출 저감 등의 친환경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나라 해운업과 조선업의 상생이 우선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까지 선주들이 수소와 LNG 등을 놓고 신조선 도입을 망설이고 있지만 방향이 확실히 잡히면 발주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이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부장은 “미국 유럽 등도 탄소배출을 하면서 성장했지만 앞으로 속도와 규제 등은 중국에 달렸다고 본다”며 “우리나라 해운조선업이 탄소배출에 미리 대응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기업들이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의 변화와 온라인과 비대면을 중심으로 성장 중인 이커머스(전자상거래)시장에 주목하는 한편, 빅데이터시대에 핵심을 파악한 올바른 처리능력과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은 “담당자들의 면책을 제도화해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에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美 대선결과에 따라 선형별 전망도 엇갈려
영국 해운조사기관인 베셀즈밸류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선형별 전망이 엇갈린 거란 결과를 내놨다.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은 바이든을, 유조선은 트럼프를 선주들이 각각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컨테이너선은 트럼프가 계속 집권할 경우 자국우선주의로 미중 무역분쟁 마찰이 두드러지며 보복 관세 부과가 계속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베셀즈밸류 아드리안 에코노마키스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최근 무역분쟁은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무역 마찰이 심해져 컨테이너선 선주들은 바이든을 지지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중국이 미국에 맞대응하기 위해 부과한 관세가 벌크선 수요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벌크선 역시 바이든을 지지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치적 변동성과 불확실성은 유조선 선주들에게 호재가 다가올 것으로 내다봤다. 이란 제재로 중동시장 점유율이 잠식되고 미국에서 아시아로 원유 수출이 늘면서 톤마일이 길어져 시황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란 분석이다. 그는 ”수요가 유지된 상황에서 공급을 줄인 데다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트럼프의 집권으로 유조선 선주들은 상당한 이익을 누렸다“고 말했다.
벌크선시장 전망은 중국의 수입 여부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은 2021년 시작하는 제14차 5개 년 계획과 2035년 장기발전비전과 목표의 핵심으로 ‘쌍순환’을 제시했다. 소비 확대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쌍순환’ 전략으로 올해 4분기는 철강이, 내년엔 석탄 철광석 곡물 증가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됐다. 심슨스펜스영(SSY) 데릭 랭스턴 팀장은 “이 예측이 실현되려면 중국에서 높은 수입을 유지해야 한다”며 “운임은 2020년과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전했다.
유조선시장의 시황은 내후년부터 회복세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신조선 인도가 2021년 크게 줄어드는 반면, 해체량은 증가해 장기적으로 수급 개선이 표면화될 거란 이유에서다. 용선료는 2021년 바닥을 친 이후 2022~2024년에 급격한 회복을 이뤄낼 것으로 예상됐다. 마리타임스트래티지인터내셔널(MSI)팀 스미스 이사는 “장기적으로 유조선 선대 증가는 매우 제한적이고 회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_코리아쉬핑가제트 https://www.ksg.co.kr/news/main_newsView.jsp?pNum=128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