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숨진 소장 거래처 물량 ‘유족에게 못 준다’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고(故) 이모(40)씨의 유족에게 이씨 거래처의 택배 물량을 넘겨주는 것에 대해 이씨 죽음의 가해자로 지목된 노조원과 택배노조가 계속 반발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씨 사망 뒤 그가 운영했던 김포의 A대리점은 두 개의 대리점으로 쪼개져 운영되고 있다. 유족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두 대리점과 별개로 일반 배송 없이 집화만을 전문으로 하는 택배 대리점을 냈고, 이씨가 관리했던 A대리점의 집화 물량을 가져오기로 한 상태다. 집화처란 택배사에 물건 배송을 대량으로 의뢰하는 고정 거래처다. 보통 대리점 소장이 영업해 물량을 따오면 택배기사들이 물건을 터미널로 싣고 오고 수수료를 받는다.
택배노조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CJ대한통운이 A대리점과 거래하던 집화처를 11월부터 (유족의) 새 대리점으로 넘기며 택배노동자들이 생존권 위협에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물량을 빼앗으려는 것은 노조 와해 시도”라고 했다.
이씨 유족은 지난 15일 “택배노조는 유족들의 생계를 벼랑 끝으로 몰지 말라”는 입장문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유족 측은 “자신과 세 자녀의 생계를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고인의 아내는 특별한 직업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고, 남편을 도와 대리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조금 알게 된 택배 집화 업무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며 “노조원들이 집단 괴롭힘으로 고인을 죽음으로 몰았는데, 이제는 택배노조가 직접 나서 유족들의 마지막 생계 수단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생계 위협을 당하는 것은 노조원이 아닌 유족’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유족 측은 “어느 택배사, 어느 대리점에 물건 발송을 맡길지는 전적으로 집화처의 선택이고, 영업을 뛰어 물량을 따온 것도 고인인데 노조가 마치 이를 자신들의 물량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다시 또 반발했다. 유족 입장문이 나온 직후 추가 보도자료를 내고 “유족들의 마지막 생계 수단을 빼앗으려 할 의도가 전혀 없다”면서도 “그러나 (유족의 생계 보장이) 기존 택배 노동자의 물량을 빼앗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노조는 대신 ‘CJ대한통운(원청)이 본사 물량을 유족에게 주든지, 유족이 가져간 만큼의 물량을 조합원들에게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물량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생계 위협’이라는데 집화는 매출의 평균 12%
택배노조는 “노조원들이 생존권을 위협받을 처지에 놓였고, 일부는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2일 택배노조가 공개한 가해 노조원 11명의 지난 7월 매출은 430만~1026만원으로 1인당 평균 703만원이었다. 매출은 집화와 일반 배송으로 나뉘는데, 전체 매출 중 집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12.7%(89만원)에 그쳤다. 그나마 노조 공개 자료의 집화 항목에는 반품이나 편의점 택배까지 포함돼 있어서 순수한 의미의 집화 매출은 실제로는 그보다 적다. 유족에게 집화 물량을 넘겨도 1인당 수입이 줄어드는 평균이 월 89만원보다 훨씬 더 적다는 뜻이다.
전모씨(39.5%), 조모씨(37.5%) 처럼 매출의 상당 부분을 집화가 차지하는 경우도 있긴 있다. 하지만 집화가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노조원은 그 외에는 없었다. 나머지 중 3명은 10%대를 차지했고, 6명은 5%가 채 안 됐다. 지난 12일 “노조원들이 생계 위협을 받을 지경”이라며 단식 농성을 시작한 여성 조합원 한모씨의 경우 총 795만원 매출 중 29만원이 집화로 표기돼 있지만, 실제로 순수한 의미의 집화 매출은 전혀 없다. 집화 물량이 없어 손해 볼 일이 없는 노조원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며 단식 농성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대해 택배노조 측은 본지 통화에서 “노동자 연대 의식(때문에 한씨가 단식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