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만에 집에서 택배를 받을 수 있게 됐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집콕’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지난해부터 택배 물량이 폭증하고 있다.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생활·건강 상품은 물론 식재료까지 택배로 받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도 산간지역 오지마을에서는 집에서 택배를 받지 못하는 주민이 여전히 많다. 택배업체들이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배송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로켓배송, 새벽배송 등 ‘당일배송’의 영향권 아래에 있지 못한 주민들은 택배를 찾으러 읍내까지 40분~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접경지역인 강원 양구군 양구읍 웅진리와 수인리, 월명리, 상무룡리, 국토정중앙면 두무리와 원리, 방산면 천미리 등 7개 오지마을이다. 택배업이 시작된 후 30년 가까이 온전한 택배서비스를 누리지 못했던 이곳 마을 주민들이 집에서 택배물을 받게 됐다.
오지마을에서 마음 편히 택배서비스를 받게 된 것은 불과 한 달여 전부터인데, 묘안을 짜낸 자치단체의 노력 덕분이다. 양구군은 지난 2월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양구대리점, 양구지역자활센터 측과 ‘택배 미배달지역 해소를 위한 배달 업무 위·수탁 협약’을 체결했다.
양구군은 지역자활센터에 보조금을 지급해 차량(트럭)을 구입하도록 하고, 유류비 등 택배 배송운영비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택배업체는 배송수수료 일정 금액(개당 1000원)을 자활센터에 지급하기로 했다. 자활센터는 지난 3월 중순부터 자활근로 참여자를 활용해 오지마을에 택배 배송을 시작했다. 최근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 택배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과는 딴 세상 얘기다.
지난 4일 오후 양구군 양구읍 ‘CJ대한통운택배 양구 서브 터미널’. 오지마을 택배 배송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찾은 이곳에선 양구지역자활센터의 ‘드림배송 사업단’ 직원 5명이 최대 700㎏까지 적재할 수 있는 트럭에 택배상자를 싣느라 바쁜 손놀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형묵 드림배송 사업단 반장(57)은 “워낙 먼 거리를 오가야 해 다소 힘들긴 하지만 택배를 받는 오지마을 주민들이 너무 기뻐하며 반겨줘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택배 터미널을 빠져나온 트럭이 12㎞를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소양호변 산골마을인 웅진리였다. 드림배송 사업단 직원에게서 택배물을 전달받은 주민 임덕훈씨(62)는 “수고하신다”는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임씨는 “그동안 양구읍내까지 차를 타고 가서 택배를 찾아왔는데 이렇게 집까지 배달해주니 정말 고맙다”며 “도시에선 당연하게 여겨질 일도 시골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드림배송 사업단 직원들은 하루 평균 택배물 40~50개를 배달한다. 트럭을 타고 읍내에서 수십㎞ 떨어진 국토정중앙면 두무리와 방산면 천미리까지 순회하다 보면 오후 8시를 넘겨 일하는 경우도 있다.
이경우 양구지역자활센터장(44)은 “그동안 천미리 주민들은 택배를 찾기 위해 1시간가량 차를 몰고 읍내까지 오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며 “오지마을까지 택배를 배송해주는 사업을 시행하니 차량 운전이 여의치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구군은 오지마을 택배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자 자활센터에 보조금을 추가 지원해 트럭 1대를 더 구입하도록 하고, 배송뿐 아니라 집하까지 담당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도서·산간 지역과 같은 물류서비스 취약지역에 대한 비용지원 등의 근거를 담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